1.21 사태의 발생과 684 부대의 창설
1968년 북한의 124부대 무장공비 31명이 대통령 암살을 위해 남한에 침투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침투에 특화된 훈련을 받았던 무장공비들은 민간인과 경찰들을 다수 살해하며 청와대로 진입하였으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28명이 사살되고 나머지는 도주하게 됩니다. 당시 남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이 사건에 크게 분노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북한에게 복수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같은해 4월에 북한 김일성의 목을 따온다는 목표 하나를 가진 특수부대를 창설하는데 이것이 684 부대였습니다.
실미도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정부에서는 사형수 등의 범죄자들과 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깡패들을 포섭하여 684 부대를 구성합니다. 북한의 암살시도를 똑같이 따라해 복수해주겠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였기 때문에, 일종의 소모품 처럼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사형수 한상필,중간보스 조근재, 조폭 출신 원희, 박찬석 등 여러 인물들을 설득해 실미도로 데려오는데, 인원은 북한이 보냈던 무장공비의 숫자와 동일한 31명 이었습니다.
684 부대는 최재현 준위와 조돈일 중사의 지휘아래 혹독한 훈련을 받기 시작합니다. 부대원들 1명당 실제 군인 1명이 감시하며 훈련이 진행됩니다.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가차없는 처벌이 진행되고, 훈련 진행과정에 불복종 하면 사방에 총을 쏴대며 죽음의 위협을 가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납치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열을 가한 인두로 살을 지지며 고문에 대비하는 훈련도 진행됩니다. 대신 훈련병들에게 훈련 외에 지원되는 식사등은 교육을 진행하는 장교들보다 훨씬 좋은 수준으로 제공됩니다. 힘든 훈련을 감내하는 대신 일종의 작은 보상이라도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훈련이 진행될수록 684 부대원들은 어느 특수부대 못지않은 인간병기가 되어갑니다. 이제 김일성의 목을 치러갈 준비를 마친 것이었습니다.
남북정세 변화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684 부대
하지만 1.21 사태 후 10여개월의 시간이 흐르자 서로 특사가 오가고 공동성명을 하려고 하는등 남북간은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되게 됩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684 부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창설 당시에도 복수용으로 만들어졌고, 구성원들도 변변찮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김정일 암살명령이 내려오지 않자 최재현 준위는 베트남 파병이라도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684 부대가 세상으로 나오는것을 꺼려했던 고위공직자들에 의해 묵살됩니다. 결국 지원은 적어지고 똑같이 의미없는 훈련만 반복되는 일상에 684 부대원들은 불만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결국 몇명이 탈영하여 인근 여교사를 성폭행 사는 사건이 발생하고, 최재현 준위는 이들을 총살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 684 부대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옵니다. 최재현 준위는 부대원들을 아끼는 조돈일 중사를 섬 밖으로 출장보내고 거사를 치르려 하지만, 이미 분위기를 파악한 684 부대원들은 훈련장교들을 제압하고 탈줄하게됩니다. 결국 실미도를 탈출하여 송도에 상륙하고 시외버스를 탈취해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청와대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본인들의 존재가치를 결정해준 정부에게 현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684부대의 진격을 언론에 이렇게 공포합니다. 1.21 사태와 같이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또 침투했으며 지금 인천에서 서울로 침투중입니다. 시민들은 이들 모두가 무장공비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출장나왔던 조돈일 중사만은 이들이 특수훈련을 받은 684 부대임을 외치며 공격을 멈춰달라고 말합니다. 혼자만의 외침은 공허한 아우성이 되어버리고, 결국 684 부대원들은 시외버스에서 인질이 되었던 시민들을 내보내고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하고 맙니다.
비극적인 역사의 상기로 시작된 첫번째 천만영화
실미도는 분단국가의 역사서에 기록될 비극적인 사건인 684 부대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상영된 2003년은 지금과 같이 미디어나 SNS 를 통한 정보의 전달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가 가진 사회적 파급력이 남달랐습니. 휴전을 하고 있는 분단국가였기 때문에 1.21 무장공비 침투가 있었던 것이지만, 남한도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684 부대를 만들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684 부대가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도 독재의 잔재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는 사회고발이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이루어 질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지지만,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흥행하는 영화로 만들어 다시 상기시킬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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