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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사도' - 안타까운 붕당정치 역사의 시발점

by 섭이네별마당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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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집권과 세자 이선의 탄생

 

 병약한 경종이 일찍 서거하게 되자, 노론의 지지를 받은 영조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에는 붕당정치가 과열되어 노론과 소론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시기였는데, 영조는 자신을 지지해 준 노론을 중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당에서 고르게 인재를 중용하는 탕평책을 펼칩니다. 결과적으로 붕당 간의 대립으로 소모되는 나라의 국력 손실을 막고 좀 더 실용적인 사안에 힘을 쏟을 수 있었던 정책이었습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조정이 안정되자 다음 근심거리는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로 후계인 세자의 존재였습니다. 좋은 일은 같이 온다는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세자인 이선이 태어났습니다. 이선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학문과 무예에 출중하여 궁의 어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오랜기간 집권하며 세자와 신하들을 시험한 영조

 

 문제는 영조의 즉위 기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왕위를 유지하던 영조 때문에 신하들도 다음 후대를 대비하지 못하고 영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름지기 세자도 자신의 세력을 꾸리고 다음의 왕이 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하지만 집권 시기가 30년이 지나도 정정한 영조를 두고 세자의 세력이 되면 역모로 몰려 처형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영조는 자신의 왕권을 시험하는 성격을 가졌었습니다. 세자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으니 대리청정을 하여 자신은 뒷선으로 물러나고 세자에게 조정의 운영을 맡겼지만, 결국 결정하는것은 본인 이었습니다. 세자가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여도 영조는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되돌리기 일쑤였고, 이 일로 세자를 신료들 앞에서 나무라는 일도 많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보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고 왕을 그만둔다고도 자주 말하며 세자와 신하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도 많았습니다. 당시 분위기로는 무릇 왕이 물러난다 할 때 이것을 반대하지 않으면 역모의 마음이 있다 하여 처벌받을 수 있었기에 반응을 보고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시험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분노가 어울어진 비극적인 결말

 

 이런 일들을 겪으며 세자 이선은 정신이 피폐해졌습니다. 그래서 글공부가 아닌 무예나 잡기들을 연마하며 잠시나마 일탈을 하게됩니다. 영조는 이런 세자의 행실에 매우 분노하며 세자를 꾸짖고 못마땅해 합니다. 그럴수록 이선의 일탈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결국 조정의 신료들도 세자를 폐위해달라는 상소를 올리게 되고 영조는 세자를 자신이 죽이기로 마음먹습니다. 세자를 뒤주에 넣어 먹을 것을 주지 말고 굶어 죽게 만들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은 세자를 뒤주에 가두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뒤주에 못질을 하여 세자를 가둡니다. 아버지의 따듯한 말 한마디만을 바랐던 사도세자 이선은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외롭게 뒤주 속에서 죽게 됩니다. 이후 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영조의 뒤를 이어 정조로 등극합니다.

 

안타까운 붕당정치 역사의 시발점

 

 영화 '사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도세자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삐뚤어진 애정으로 온전히 세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영조의 모습이나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외면당하는 사도세자의 모습들은 역사를 알고 있는 관객이 보아도 안타깝게 느껴질만합니다. 언제부턴가 영조는 사도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신하들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 세자를 보고 나면 귀를 씻는 등 감정적으로 미워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약간의 가정이지만 아마도 영조가 장기집권하면서 치매와 같은 병을 앓으며 판단력이 많이 흐려져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탕평책을 통해 조정의 안정화를 꾀한 영조였는데 결국 가정의 불화 때문에 조정의 혼란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후대에 정조가 등극하고 실용적인 조선의 방향을 잡아나가지만 일찍 서거하시어 이후 조선은 큰 발전이 없는 붕당정치의 반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많이 아쉬운 역사적 흐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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