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영화 '남한산성' - 성리학의 끝자락에서 갈등 하는 두 충신

by 섭이네별마당 2022. 8. 29.
반응형

 

성리학의 끝자락에 선 두 충신

 

 조선은 건국이념을 송, 명나라 때 정립된 성리학으로 택했는데, 이는 도덕적인 관념이 매우 강한 학문이었습니다. 공자의 말씀처럼 예를 중요시하여 자신을 갈고닦아 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기본 가치로 삼았던 이념이었습니다. 나라의 관계에서도 명나라는 부모의 나라로 사대의 예를 중요시 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명을 정복하고 새롭게 중국을 정복한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의 칸이 요구한 군신관계를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칸이 직접 조선을 토벌하기에 이르고, 국제정세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청나라 대군 앞에 포위당해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됩니다.

 이때 인조에게는 신뢰하는 두 충신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자신이 배운 성리학대로 오랑캐에게 굴복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김상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사대의 예던 오랑캐에게 복수하는 것이던 일단 살아남아야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최명길이었습니다. 김상헌은 남한산성에서 버티고 있으면, 전국 각지에서 오랑캐를 처벌하기 위한 병사들이 집결하에 인조를 구할 것이라 주장하고, 최명길은 이미 적의 군세가 조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음을 인지하고 더 늦기 전에 청에게 군신의 예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명길의 주장은 성리학의 근본이념에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남한산성 내에서 그는 외로운 주장을 하게 되고, 인조는 끝까지 투쟁하자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르게 됩니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미련한 왕의 최후

 

 남한산성 인근에 인조를 구하러 온 장수들이 있었으나 청군에게 발각되어 전멸하게 되고, 무당에게 길일을 받아 무리한 출전을 감행하는 제찰사는 안그래도 부족한 조선의 군대를 대부분 잃고 맙니다. 사실 청군은 조선의 왕을 포위하고 칸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심을 얻기 위해 칸은 자신에게 몇번이나 불복한 조선의 왕을 포용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어진 황제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최명길 외에는 남한산성 내에 아무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고,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이 청에게 사자로 다녀온 뒤 적과 내통하는 것이라 몰아갑니다.

 인조는 결국 끝까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신하들을 다그치며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방이 포위되어 풍전등화에 처한 현실에서 입에 바른 말만 하는 신하들의 달콤한 말을 듣고 중국을 정복한 청의 군세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청군이 쏘아대는 화포를 맞고 나서야 적이 자신들이 스스로 굴복해 나가길 바라고 있었다는 현실을 깨닫고 칸에게 구배를 올리러 남한산성을 내려옵니다. 최명길은 왕의 구배 모습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김상헌은 자기 방에서 목매달아 생을 마감함으로써 성난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줍니다.

 

무능한 지도자가 불러온 비극적인 결말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쓴 김훈의 남한산성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흔히 말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맞기까지 조정 내의 갈등 상황을 현실감 있게 재구성하여 보여주는데, 인물들 간의 의를 추구하는 방향이 충돌하는 장면들이 감명 깊습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간신배들과는 다르게 의로움이 몸에 베어있어 조정에서도 사람 됨됨이가 드러나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모습은 슬픈 역사 속에서 충신이 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보여줍니다. 꺾이지 않는 꽃이 되고자 하는지 아니면 다시 필 봄을 기다리며 서늘한 겨울을 맞이하고자 하는지, 각자의 주장이 근거가 있기에 인조도 쉽게 경정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조정의 왕인 인조입니다. 신하들의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이던 아니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결정을 했어야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간신배들에게 휩쓸려 청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서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게 만드는 선택은 지도자로서 최악의 선택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지키지 못한 김상헌은 목매달아 자살이라도 했지만, 인조는 훗날 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고 나서 그들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어내 복수하자는 소현세자를 멀리한 것을 보면 자신의 죽음만을 걱정했던 볼품없는 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결정이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대표를 잘 선택해야 함을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