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제가 좋아하는 손 원 평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아몬드’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윤 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정서 장애를 앓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알렉씨티미아라고 부릅니다. 뇌 속 편도체라는 기관의 크기가 작아 공포나 불안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환인데 사람들은 이를 공감 능력이 없는 괴물 취급하며 기피하지만 윤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윤재가 가진 특별함 덕분에 곤이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과 가족과의 관계도 유지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윤재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저는 이러한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저라면 어떻게 했겠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며 몰입할 수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진한 여운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서 내용
우리 뇌 속에서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것은 공포나 불안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편도체 옆에 아몬드라고 불리는 작은 크기의 구조물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작가의 상상력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주인공 윤재는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아 남들보다 두려움도 많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됩니다.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정성 보살핌 덕분에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윤재가 16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 윤재 앞에 세상은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줍니다.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뜻밖의 인연이 찾아오면서 윤재의 인생엔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곤이의 등장입니다.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곤이와 도라 남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윤재와 심 박사 간의 관계입니다. 둘 다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어 흥미로운데요. 먼저 곤이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겨진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며 친구들과도 잘 지내죠. 다만 딱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것이었어요. 도라는 반대로 마음씨 착하고 여린 소녀예요. 그녀 역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아빠는 술주정뱅이에다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폭군으로 집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로 인해 도라는 늘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지만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환경에서 자란 두 아이는 서로 가까워지면서 우정을 쌓게 되는데요.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지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다음으로 윤재와 심 박사의 관계인데요 이는 조금 독특해요. 언뜻 보기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윤재는 익히 알다시피 태어날 때부터 편도체가 작게 태어났지요. 이에 따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 졌지만, 불행히도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할머니를 잃은 뒤로는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심 박사는 한때 촉망받는 의사였으나 지금은 병원 운영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심지어 아들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치매 증상을 앓고 있어요. 이러한 배경 탓에 좀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윤재를 만나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소설 『아몬드』는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자 베스트셀러 1위 작품입니다. 출간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인기몰이 중인데요. 책 제목이기도 한 아몬드는 편도체를 뜻하는데요. 작가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괴물과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몬드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몬드 생김새가 딱 그렇게 느끼지네요. 겉보기엔 평범한 견과류 같지만 들여다보면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모양새가 기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초반부까지만 해도 담담하게 읽어나갔지만 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해져 오더라고요. 어쩌면 그건 소설의 스토리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상처들을 수면위로 끌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제 경험을 잠시 말씀드려 보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강아지를 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외모에 반해 저도 모르게 쓰다듬었는데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어찌나 무섭던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었지요. 그러자 친구 어머니께서 다가와서 달래주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 아닌데 그땐 왜 그리 무서웠는지 모르겠네요. 그날 이후로 강아지만 보면 겁부터 났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무서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길 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요. 아마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에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아지긴 했지만 개공포증(?)은 남아 있어요. 만약 제가 작가였다면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 같아요.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이었겠지만 과정만큼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런 트라우마를 사람들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이런 트라우마를 소설로 모두가 공감하고 치유될 수 있게 작품을 만들어 내신 것 같아요. 저의 안 좋은 기억들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치유가 되는 걸 느꼈으니까요. 다른 분들도 한 번쯤 이 소설을 통해 치유하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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