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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돈키호테 - 시대를 극복하는 삶을 향해

by 섭이네별마당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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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 문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1605년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었습니다.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무려 4억 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라고 볼 수 있지요. 또한 다양한 예술작품 및 문화 콘텐츠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오마쥬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패러디물 영상 제작 시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으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걸까요?

도서 내용

우선 작품 자체로만 보자면 다소 황당무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입니다. 기사 소설에 푹 빠져 정신 나간 노인네 취급을 받는 이발사 출신의 돈키호테라는 늙은이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둘시네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주목걸이를 찾아오기 위한 여정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풍차를 거인이라며 달려드는 장면에서는 도대체 이 늙은이가 노망이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희극이 극에 달합니다. 결국 진주목걸이를 훔쳐 간 산적들과 마주하여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아버지시여, 나의 영혼을 거두소서, 저들은 죄인이 아니올시다!' 라는 돈키호테의 기도에 감동한 산적 두목 테네브룬이 그를 살려주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진주목걸이를 가지고 돌아오지만 늙고 볼품없는 자신의 청혼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고 돈키호테는 사람들과 멀어져가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돈키호테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워하면서 이해해 주게 됩니다. 무언가 바보같은 행동을 하지만 기사도에 입각하여 완전하게 몰입된 돈키호테의 모습은 마냥 웃어넘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그 이성을 통해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만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때로는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라는 걸 우린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돈키호테의 시대적인 배경은 제국주의의 역사가 한창 진행되던 17세기입니다.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점령하여 금과 은을 몰수해와 스페인의 국력을 지속시키려고 했던 때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당시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지휘하며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자주 벌입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의 영국에게 무적함대가 무너지게 되면서 스페인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가 무너지고 영국의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지요. 세르반테스는 당시 영웅주의에 휩싸여 있던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입신양명에 성공하는 기사 소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영원한 영광은 없는 것처럼 강대국 스페인의 쇠락을 경험하며 이를 비판하기 위해 돈키호테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영웅주의를 현실에서 찾고자 했던 펠리페 2세를 비판하여, 시대적 의미를 관통하는 소설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영웅주의를 비판하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지만, 현대에서 돈키호테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놀라운 용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의미 말이죠. 늙은 모습을 한 자신의 한계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하는 기사도라는 신념을 현실에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돈키호테의 삶은, 끝까지 조롱받을지라도 결국에는 숭고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용기 있는 삶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살면서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결국 내면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멋있는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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